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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연예인 삼총사 ‘정선아리랑’ 들고 무작정 상경해요” 노래극 <여자의 일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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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4
조회수
1489
내용

   

[한겨레] [짬] 정선아리랑 노래극 공연하는 권혜경·신현영·최진실씨

정선아리랑 노래극 <여자의 일생>을 함께 만든 ‘가리왕산 삼총사’와 연출팀. 뒷줄 왼쪽부터 연출 권혜경, 실제 주인공 엄순분 할머니, 조연출 박용범, 정선아리랑 전수장학생 신현영, 정선아리랑 이수자 최진실씨. 사진작가 이한구 제공


“정선 아라리처럼 인생은 인연의 고개~고개를 넘어가는 것 같아요. 귀촌 14년 만에 서울에서 정선아리랑 공연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인연의 시작은 2004년 정선 오일장 장터에서 시작됐다. 서울내기인 그가 마흔 살에 손위 언니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희귀 면역질환으로 실명 위기 진단까지 받아 쫓기듯 도시생활을 접고 정선 가리왕산 아래 회동리 산골로 들어온 직후였다. 장터 한구석 공연장에서 들려온 구슬픈 ‘아라리 소리’에 홀린 듯 빠져들었다. “혼자 낯선 산골에 내려와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막막했는데 그날 아라리 소리를 들으니 따뜻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정선아리랑 마니아가 된 그는 2009년 창립한 정선 군립 아리랑 예술단의 <정선아리랑> 창극을 보러 갔다가 20대 여성 소리꾼 2명에게 반해 ‘매니저’를 자처하게 됐다.

오는 13일 서울 삼성동 싹(SAC)아트홀에서 정선아리랑 노래극 <여자의 일생>을 무대에 올리는 ‘정선 연예인 삼총사’ 권혜경(54)·신현영(35)·최진실(31)씨가 그 인연의 주인공들이다. 지난 8일 강남의 한 소극장에서 리허설 중인 삼총사를 만났다.



14년 전 희귀병 안고 귀촌한 ‘산꾼’ 권씨
장터에서 들은 ‘아라리’ 한 자락에 ‘위안’
2009년부터 젊은 소리꾼 신·최씨 열성팬
“볼수록 아까운 재능에 넓은 무대 마련”


13일 강남 싹아트홀 ‘여자의 일생’ 공연
이웃 엄순분 할머니 이야기 노래극 엮어



정선아리랑 노래극 <여자의 일생> 포스터


“두 젊은 친구의 재능이 볼수록 아까웠어요. 더 늦기 전에 더 넓은 무대에서 꿈을 펼쳐 보이게 해주고 싶었어요.”

이번 공연으로 이어진 첫 고개는 올봄, 동네 할머니들과 밥을 먹다가 신·최 두 친구가 젓가락 장단으로 부른 옛 트로트 가요 ‘울어라 기타줄아’(1956년·손인호) 동영상이었다.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정식으로 공연하면 재밌겠다는 요청이 밀려든 것이다.

알고 보니, 최씨는 정선 토박이로 어릴 때부터 할머니들 어머니들의 아라리 가락을 따라 한 ‘타고난 소리꾼’으로 지금은 ‘정선아리랑 이수자’다. 연극배우로 일산에서 살던 신씨는 2009년 정선아리랑예술단 단원으로 뽑힌 뒤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며 정선에 정착한 ‘정선아리랑 전수장학생’이다. 두 소리꾼은 2012년 <전국노래자랑> 정선 편에 나란히 출전해, 각각 대상과 인기상을 받으며 ‘정선 연예인’으로 공인받았다. 최씨는 그해 <전국노래자랑> 연말 결선에서도 ‘정선아리랑’으로 장원을 차지하며 가수 이름도 얻었다.

“사실 공연 기획도 연출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처음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같은 곳에서 버스킹이라도 해볼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경비를 마련하려고 산나물 장아찌를 만들어 팔았는데 겨우 54만원 벌었어요. 하하.”

경비 마련보다 더 힘든 고개는 노래극의 대본 작업이었다. 지인이 소개한 드라마 작가에 이어 연극 희곡작가에게 부탁을 해봤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돌파구는 권씨가 수년 전부터 ‘여행계’를 꾸려 국내외 여행을 주선해온 동네 할머니 계원들에게서 열렸다. “역시나 여느 때처럼 할머니들과 모여서 밥을 먹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가, 이거다 하는 영감이 떠올랐어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뗏목을 모는 떼꾼 아버지가 서울을 오가며 한때 떼돈을 벌었으나 주막 기생과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7살 때 정선 산중의 화전민촌으로 이주했다. 화병으로 눈까지 먼 아버지를 오빠가 지게에 태워 들어간 화전민촌마저 ‘공비 출현 사건’으로 강제소개를 당해 13살 때 정선 회동리로 옮겨왔다. 아버지는 끝내 세상을 뜨고 방 한 칸에서 홀로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는 끼니도 어려운 살림에 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글도 못 깨쳤다. 17살 때 이웃 대추나무집으로 억지로 시집이라고 와보니 술꾼 시어머니에 가난은 더했다. 32살 때 산후조리를 못 해 이빨이 모두 빠져버렸다. 하지만 정선탄좌 광원인 남편과 5남매를 정성껏 키워냈다. 가계를 돕겠다며 중학교만 마치고 무작경 상경했던 장남도 야간고와 대학을 나와 포항제철 부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웃 엄순분(75)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대로 ‘여자의 일생’이었다. 올해 등단한 신예 소설가 이경란씨가 각색을 맡아 노래극으로 탄생했다. ‘우리 부모 나를 기를 때 금옥같이 하더니/ 외딴 골목 절벽 밑에다 왜 나를 두었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수천 가지가 넘는 정선아리랑 가운데 잘 맞는 노랫말을 고르고 더러는 새로 지은 14곡과 ‘젓가락 장단’ 트로트 가요 6곡을 엮었다. ‘소녀의 꿈’ ‘물새 우는 강언덕’ ‘낭랑 18세’ ‘나는 열일곱살’ ‘앵두나무 처녀’ 등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에게 익숙한 가요들은 중간중간 관객들과도 함께 부른다.

최씨가 주인공 ‘엄 할머니’를 맡고, 신씨는 ‘엄 할머니의 어머니’ 등 1인 6역을 한다. ‘글은 몰라도 정선 아라리 가락은 밤새도록 부를 수 있는’ 엄 할머니도 극의 시작과 끝에 등장한다. 지난 두 달 동안 ‘삼총사’는 권씨네 집에서 합숙하며 이웃 빈집에서 밤낮없이 연습했다.

이제 마지막 진짜 고개가 남았다. 권씨의 부탁으로 연기 지도를 해준 연극배우 겸 연출감독 박용범씨가 버스킹이 아니라 정식 공연을 ‘강력 추천’한 것이다. 무대 연출과 서울 공연장 대관을 서둘러야 했다. “회동리 할머니들과 가리왕산 포수들에게 ‘정선 고현정’이라고 불리게 된 주특기인 붙임성과 전국적인 ‘오지랖’ 네트워크를 총가동했죠.”


여성산악인회 부회장인 권혜경씨의 산악인 지인이 무료로 빌려준 서울 청담동 한 소극장에서 지난 8일 <여자의 일생> 주연 배우 최진실(왼쪽)씨와 신현영(오른쪽)가 리허설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김경애 기자

귀촌하기 전, 등반 전문잡지에서 일했던 권씨는 내내 운영 중인 민박집(수정헌)과 한국여성산악회(부회장) 활동으로 쌓아온 지인들의 자발적인 도움 덕분에 ‘믿기지 않는 비용’으로 공연이 가능해졌다고 소개했다. “알프스 원정 가려고 붓고 있던 적금을 깨긴 했지만, 대부분 감자 한 상자, 토종꿀 한 병, 묵은김치 한 통으로 섭외했으니까요.”

이 작가와 박 감독을 비롯해서 기타 김광석·드럼 김정균·보컬 손지연 남수정씨와 조명 등 무대팀, 공연 포스터 촬영 이한구 산사진 전문작가도 기꺼이 재능기부를 해줬다. ‘삼총사’는 지난주부터 서울의 한 지인 집에 묵으며, 공짜로 빌린 강남의 한 아트홀에서 막바지 리허설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프로 <한국기행>에 ‘가리왕산 삼총사’로 소개돼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270석 입장권 판매도 순조롭단다. 누구보다 회동리 마을 주민들은 무대 의상용 한복이며 지게 같은 소품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전세버스를 타고 공연을 보러 올 예정이다.

장성호 피디는 이번 공연의 메이킹 필름을 오는 10월 19일 ‘제1회 정선 여성영화제’에 출품하고자 준비 과정을 기록 중이다. <여자의 일생> 노래극은 오는 12월 7·8일 일본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의 위안부 아리랑 탑 앞에서도 공연된다. 재일조선인 위문 목적의 무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리허설하면서 수십번 듣고 부르며 새삼 아리랑의 힘을 실감하고 있어요. 저를 살려준 그 따뜻한 위안을 관객들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우리 공연은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예매 인터파크. (010)2908-8848.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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